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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한 성욱이에게도 봄날은 오는가. 본문

나의 아들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한 성욱이에게도 봄날은 오는가.

tery kim 2016. 4. 7. 23:20

성욱이에게도 봄날은 오는가.


나의 아들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겠다.

2010년 12월 20일에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청화병원 분만실에서 태어났다.

강남성모병원으로 응급 이송 후 소아 중환자실에서 근 이개월 동안

인큐베이터 생활을 하였다.


태어날 때 부터 호흡이 멈춰 있어서 뇌로 산소가 공급이 안됨으로써

뇌세포가 거의 죽었다.

뇌사 일보 직전에 응급처치로 살아났다.


울지도 않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밥 먹는 것도 콧줄로 처음엔 먹였다.


성모병원 간호사가 가정 방문을 통하여 콧줄 길이를 재서 위까지

코로 집어 넣어서 해주고 갔다.


우리는 분유를 타서 시간마다 일정한 양을 콧줄에 넣어 주면 끝이었다.


와이프가 입으로 한번 먹여 보자고 해서 미음 식으로 해서

여러번의 시도 끝에 식도로 넘기게끔 밥을 주었다.

의사 선생님이 와이프보고 대단하다고 하였다.


집에만 있으니 면역력도 떨어지고,

감기에 걸려도 가래가 배출되지 못해서 항상 기침 감기가 잘 걸렸다.

감기가 오래되면 폐렴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강남성모병원에 1년에 한두번씩은 꼭 입원했다.

응급실에 가서 일반병실이 없으면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날들도

많았다.


폐렴도 자주 걸리니 흡입성 폐렴에 걸렸다.

폐렴보다 치사율이 높은 병이다.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버리기 때문에

호흡 곤란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노인들한테 많이 발생한단다.

그래서 그 때 위가 너무 위로 올라와 있다고 해서

위수술과 식도 수술을 같이 받았었다.


그리고 올해 2016년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2015년 11월 말경부터 기침을 많이 해서 감기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12월이 되어도 낫질 않았다.


일반 소아과에 가면 성욱이가 잘 낫지를 않으니,

영아 때부터 성욱이를 잘 아는 강남성모병원 소아과를 가는 편이다.

계속 기침을 해대는데 폐렴은 아니란다.


그리고 1월달이 되었다.

조금 괜찮아진다 싶더니 연일 또 기침이다.

항생제와 기침 약을 계속 먹이는데도 낫지를 않는다.


둘째 소율이도 감기에 걸려서 일반 소아과를 간 김에

성욱이도 강남성모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이날이 1월 23일 토요일이다.

아침에 성욱이가 입안에 피가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응급실에서 Xray를 찍었는데 결과는 비참했다.

폐렴이란다. 폐 전체가 염증이란다. 더 나쁜건 폐에서 출혈이

발생해서 그렇더란다.

이렇게 성욱이를 한번도 Xray를 찍어보지 않은 담당의사가

원망스러웠다.


응급실 레지던트한테 "오랫동안 감기로 진찰을 받았는데

왜 Xray를 한번도 찍지 않았을까요?" 하고 조금 격앙되게 물어보니

자기 의사 보호하기에 급선무다.

폐는 갑자기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진료 때 폐소리가

좋았다면 Xray를 찍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라는 논리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부모의 입장으로 이해가 가질 않는다.

폐렴이라는 전력이 많은 애고,

기침을 오랫동안 해서 항생제며 기침약이며 가래약이며

온갖 약을 다 복용했었는데도 정상으로 돌아오질 않은 애 한테..


응급실에서 바로 중환자실로 가자 했다.

물론 그 전에는 일반병실로 가자 했었지만,

사태의 심각성으로 인해 중환자실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애가 응급실에 있자 응급을 요하는 환자로 바뀌게 되었다.

즉, 호흡이 마구 가빠지고, 포도당을 놓을려고 간호사들이

혈관을 찾는데 우리 성욱이는 핏줄이 잘 안보인다.

이거를 꼽지 못하면 중환자실로 가지도 못한단다.








 

 1월 23일 응급실에서

 


 1월 23일 중환자실에 입원

 


 1월 31일 인공호흡기 삽관

 


 2월 19일 인공호흡기 삽관 빼기 시도

 


 3월 30일 기관지 절개술 시행 후 공기가 들어가서 얼굴이 선풍기 아줌마처럼 부어 오름

 


 3월 31일 수술 후 산소를 넣지 않고도 산소포화도 잘 유지


응급실에서 상황이 마무리 되고,

중환자실로 올라가서 우리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중환자실에서 연락이 왔다.

위급한 상황이 발생해서 가족중에 한명이 병원에 와 있으란다.


이불 한장 딸랑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환자 보호실이 따로 있었지만,

소아 중환자실 옆에 유아학교라는 공간이 있어서

거기서 사태의 추이를 살피기로 했다.


병원에 있으니 '코드블루 몇 층 중환자실' 이라는 멘트가

방송에서 계속 나오고, 옆에서 티비를 보니 잠도 안오고

꼬박 날을 새었다.


다행이 위급한 상황은 넘긴 것 같다고 중환자실 담당의사가

얘기하자 눈물이 나오는걸 억지로 참았다.


인공호흡기를 낀 상태로도 호흡수가 너무 빨라서 안좋은

상황도 예측해 볼 수 있었으나,

점차 안정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며칠 경과를 지켜 보자고도 했다.


이렇게 해서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삽관한 상태로

있다가 좋아지면 빼보는 일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호흡이 일정치 않고 계속 빼면 호흡이 가빠져서

다시 인공호흡기를 삽관하는 행위가 반복되었다.


그래서 의사선생님이 기관지 절개수술을 해서 목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린애한테 그런 가혹한 일을 할 수 있느냐,

3월말까지만 계속 인공호흡기 빼는 걸 시도해 보자 했으나,

너무 기다려도 안된다고 일주일만 더 시간을 주셨다.


그래도 안돼서,

3월 29일 오후에 기관지 절개 수술을 받은 것이다.

다행이 수술하고 인공호흡기를 필요로 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가래 빼는 거랑 콧줄에 밥 먹이는 거랑,

이런 연습을 와이프가 하고,

드디어 오늘(4월 7일 목요일) 두달 하고도 2주일이 지나서

일반 병실로 옮기게 된 것이다(아래가 그 사진이다).





파란만장한 석달 못된 날들이다.

기관지에 삽관한 것을 빼보는 것도 한달정도 약을 투약하고

생활해 보다 가능하다고 하니,

거기에 희망을 걸어야 겠고,

퇴원을 조금 일찍 할 수도 있다고 해서,

너무 기쁜 것 같았다.

아직 기다려 봐야 하지만 말이다.


와이프가 이마트에서 생필품을 구입하고,

어제 정리하면서 나보고 안 도와준다고 화를 내며

연신 한숨을 내뱉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나에게 주어진 운명 이라는 것을.

아들 성욱이는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소아 중환자실에 면회를 가면서 항상 다른 소아 중환자들도

보았었는데, 다들 중한 병들이다.

누워서 아무 것도 못하고 인공호흡기와 기구를 매달고

누워만 있다.

성욱이 옆에 애는 머리를 크게 다쳐서 수술을 받았는데,

그 보호자가 면회를 오면 계속 눈물을 보였었다.


세상엔 건강한 애들이 더 많지만,

이렇게 건강하지 못한 애들도 병원에 집에 많이 있다는 것을

세상이 사회가 국가가 조금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아들 성욱이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리고 싶다.

애가 태어났을 때 너무 놀래서 아무 생각도 아무런

행위도 하지 못했었다.

남들은 애가 태어나면 사진도 찍고 안아보고 그랬는데,

나는 엠블런스를 타고 강남성모병원으로 가야만 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구나.

전생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가.

하는 의구심에 가득 차 있었다.

부모님도 성욱이를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

쉬쉬 하면서 그냥 삼키셨다고 해야 되나.


아무튼 얘기 할 게 너무 많다.

하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오늘은 그만 해야겠다.


성욱이가 2016년 1월 23일에 응급실에 와서

4월 7일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이실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p.s

1월 23일부터 4월 1일까지의 중간진료비 계산서를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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